벤치의 온도 | 식지 않는 농구부 락커룸의 온도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린 지 삼십 분이 지났지만, 대학 농구부 락커룸에는 아직 땀과 파스 냄새가 가라앉지 않았다.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낮게 웅웅거리며 깜빡였다.
문이 밀려 열리고 태수가 들어왔다. 걸음을 옮기면서 땀에 흠뻑 젖은 상의 유니폼을 머리 위로 벗어 올렸다. 젖은 천이 떨어져 나가자, 아직 열이 식지 않은 넓은 어깨와 등줄기가 형광등 아래 번들거렸다.
사십 분 가까이 코트를 뛴 다리가 묵직했다. 6점 차 승리였지만, 마지막 쿼터까지 몸을 부딪친 어깨가 아직 얼얼했다. 태수는 벗은 유니폼으로 목덜미의 땀을 대충 훔치며 벤치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멈춰 섰다.
맨 끝 락커 앞에 하연이 앉아 있었다. 경기 내내 한 번도 젖지 않은 유니폼이, 오늘따라 유난히 헐렁해 보였다.
하연은 무릎 위에 팔을 얹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운동화 끈을 풀다 만 손가락이 끈 끝만 의미 없이 만지작거렸다.
태수: "다들 버스 탔는데, 안 가?"
하연의 어깨가 움찔했다. 고개를 들었다가 상의를 벗은 태수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다시 바닥으로 시선을 떨궜다.
하연: "아, 선배… 먼저 가세요. 저 좀 있다 갈게요."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태수는 대답 대신 손에 든 유니폼을 아무렇게나 락커 위에 던져두고 하연 옆에 털썩 앉았다. 오래된 나무 벤치가 두 사람의 무게에 낮게 삐걱였다.
한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체육관 쪽에서 공 튀기는 소리가 멀리서 한 번 울렸다가 끊겼다.
태수: "오늘 못 뛴 거 때문에 그래?"
하연은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이 없는 게 대답이었다.
하연: "오늘만 그런 거 아니잖아요. 이번 시즌 내내 그랬어요."
하연: "감독님이 저 쳐다보다가도 그냥 지나치는 거, 저도 알아요. 키도 작고, 몸싸움 붙으면 바로 밀리고. 연습 때 아무리 해도… 저 같은 애는 그냥 숫자 채우는 거죠."
말끝이 갈라졌다. 하연은 손등으로 눈가를 거칠게 문질렀다. 울지 않으려는 티가 너무 나서, 오히려 더 아파 보였다.
태수는 그 옆얼굴을 가만히 보았다. 땀 한 방울 맺히지 않은 하얀 이마, 벤치에 앉아서도 쉬지 않고 코트를 따라가던 눈. 경기 중에 자신이 몇 번이나 벤치 쪽을 돌아봤는지, 하연은 모를 것이다.
태수의 커다란 손이 하연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하연이 놀라 숨을 멈췄다.
태수: "숫자 채우는 애가 매일 새벽에 혼자 체육관 와서 슈팅 연습을 하냐."
하연: "…그걸 어떻게 알아요?"
태수: "나도 그 시간에 웨이트 하거든. 유리창 너머로 다 보여."
태수는 하연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젖지 않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갔다. 하연의 귀 끝이 서서히 붉어졌다.
태수: "몸싸움 밀리는 거, 맞아. 근데 넌 그 대신 누구보다 빨리 빠지잖아. 스크린 돌아 나오는 타이밍은 우리 팀에서 네가 제일 좋아."
하연: "그래도… 선배처럼 몸이 좋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말라서 맨날 튕겨 나가는 거 말고."
말을 하면서도 하연의 시선은 저도 모르게 태수의 맨 어깨와 팔뚝 위를 스쳤다가 황급히 달아났다. 태수가 피식 웃었다. 하연이 서운한 얼굴로 돌아보자, 태수는 머리 위에 있던 손을 내려 하연의 뒷목을 가볍게 감쌌다.
태수: "난 지금 네가 좋은데."
하연의 눈이 동그래졌다.
태수: "이 가는 어깨도, 손목도. 코트에서 날렵하게 빠져나가는 것도. 남들이 단점이라고 하는 거, 나한텐 하나도 단점으로 안 보여."
뒷목을 감싼 손바닥이 뜨거웠다. 사십 분을 쉬지 않고 뛴 몸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하연은 숨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가만히 있었다.
하연: "선배, 지금 위로해 주시는 거죠…?"
태수: "위로였으면 이렇게까지 안 하지."
태수가 하연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균형을 잃은 하연의 몸이 태수의 맨가슴으로 기울었고, 단단한 팔이 등 뒤로 감겨 왔다. 하연은 생각보다 훨씬 쉽게, 그 품 안에 통째로 안겨 버렸다.
태수의 187cm 몸 안에서 하연은 정말로 작았다. 태수의 턱이 하연의 정수리에 얹혔다. 땀이 채 마르지 않은 살갗에서 뜨거운 체온과 짙은 땀 냄새가 훅 끼쳐 왔다.
태수: "봐. 딱 맞잖아."
하연: "…뭐가요."
태수: "내 품에. 처음부터 여기 들어오려고 이 사이즈인 것처럼."
하연은 대답하지 못했다. 갈 곳을 잃은 손이 망설이다 태수의 옆구리에 조심스럽게 닿았다. 땀에 젖은 맨살이 손바닥에 그대로 달라붙었다. 뺨을 기댄 가슴 안쪽에서 태수의 심장이 쿵쿵 울렸다. 마지막 쿼터에 자유투를 던지던 순간보다 더 빠른 것 같았다.
형광등이 또 한 번 깜빡였다. 그 짧은 어둠 속에서 태수가 고개를 숙였다. 이마에, 그다음엔 눈가에. 조금 전 하연이 거칠게 문지른 자리에 입술이 조심스럽게 닿았다.
태수: "여기 문지르지 마. 빨개졌잖아."
하연: "선배 때문에 더 빨개지는 거거든요."
투정처럼 나온 말에 태수가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이 맞닿은 가슴을 타고 하연에게까지 울렸다.
태수는 하연의 턱 끝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가까이서 보니 속눈썹 끝이 아직 젖어 있었다. 태수의 엄지가 그 끝을 한 번 쓸고, 천천히 볼선을 지나 아랫입술 위에 멈췄다.
태수: "하연아."
하연: "…네."
태수: "선배 말고. 코트 밖에선 형이라고 불러."
엄지가 아랫입술을 느리게 눌렀다 놓았다. 하연의 입술이 달싹였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연: "…형."
그 한 글자가 떨어지기 무섭게 태수의 입술이 하연의 입술을 덮었다.
처음엔 확인하듯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하연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숨을 들이켜자, 태수는 기다렸다는 듯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숨이 섞였고, 태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깊게 파고들었다.
하연: "흐읍… 형, 잠깐…"
태수: "숨 쉬어. 코로."
낮게 웃는 목소리가 입술에 그대로 닿았다. 하연이 겨우 숨을 고르기도 전에 태수는 다시 입을 맞춰 왔다. 이번엔 서두르지 않았다. 아랫입술을 느리게 머금었다 놓고, 다시 머금기를 반복하며 하연이 스스로 입술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하연은 어디에 손을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헤매다, 결국 태수의 목에 두 팔을 감았다. 그 순간 태수가 하연의 허리를 감아 자기 무릎 위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벤치가 크게 삐걱였다.
마주 앉은 자세가 되자 하연의 눈높이가 처음으로 태수와 같아졌다. 땀에 젖은 태수의 앞머리가 하연의 이마를 간질였다.
균형을 잡으려고 짚은 손이 하필 태수의 허벅지 위였다. 경기 내내 코트를 박차고 뛰어오르던 다리는 반바지 너머로도 돌처럼 단단했다. 아직 식지 않은 근육이 손바닥 아래에서 미세하게 꿈틀거리자, 하연은 덴 것처럼 손을 떼려 했다.
태수: "왜 놔. 짚고 있어."
태수가 하연의 손등을 덮어 다시 제 허벅지 위에 눌러 앉혔다. 손바닥 가득 전해지는 묵직한 열기에, 하연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태수: "이것 봐. 이렇게 가볍잖아."
하연: "놀리지 마요…"
태수: "안 놀려. 좋아서 그래."
태수의 입술이 하연의 턱선을 따라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귓불 아래에 한 번, 목선이 시작되는 곳에 한 번. 그때마다 하연의 어깨가 작게 튀어 올랐다. 태수는 그 반응을 확인하듯, 맥이 뛰는 자리에 입술을 대고 한참을 머물렀다.
하연: "하아… 거기, 간지러워요."
태수: "간지럽기만 해?"
대답 대신 하연이 태수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태수가 낮게 숨을 내쉬자 뜨거운 숨결이 하연의 쇄골 위로 쏟아졌다.
허리를 받치고 있던 태수의 손이 하연의 헐렁한 유니폼 밑단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왔다. 커다란 손바닥이 맨살의 허리선을 감싸자, 하연이 숨을 삼키며 몸을 굳혔다. 한 손에 다 들어올 만큼 가는 허리였다.
손바닥은 서두르지 않고 척추 마디를 하나씩 세듯 천천히 등을 타고 올라갔다. 사십 분을 뛴 몸의 열기가 차가운 피부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하연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둥글게 말아 태수의 맨가슴에 바짝 기댔다.
태수: "춥냐. 떨잖아."
하연: "추워서 떠는 거 아닌 거, 형도 알잖아요."
그 말에 태수의 눈빛이 짙게 가라앉았다. 태수는 하연을 안은 채로 일어서더니, 두어 걸음 만에 하연의 등을 락커 문에 기대 세웠다. 철제 문이 쿵, 하고 낮게 울렸다.
양팔 사이에 갇힌 하연을 내려다보며, 태수가 다시 입을 맞췄다. 아까보다 훨씬 깊고 집요한 입맞춤이었다. 하연은 발끝을 세운 채 두 손으로 태수의 가슴을 짚었다. 땀이 맺힌 맨살 아래로, 넓고 단단한 가슴이 고스란히 손바닥에 닿았다.
밀어내려고 댄 손이었는데, 힘을 줄수록 밀리는 건 오히려 하연 쪽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손 아래의 근육이 크게 부풀었다 가라앉았고, 그 안쪽에서 심장이 쿵, 쿵 손바닥을 두드렸다.
태수: "아까부터 손이 계속 거기 있네."
하연: "…형이 너무 딱딱해서 그래요. 벽인 줄 알았잖아요."
태수가 낮게 웃음을 흘리며 하연의 손을 제 가슴 한가운데에 꾹 눌러 붙였다. 하연은 손을 빼는 대신, 그 위에 이마까지 기대고 말았다.
하연: "형… 누가 들어오면…"
태수: "다 갔다며. 마지막에 문 잠그는 거, 주장 일이야."
하연: "그럼 지금 잠갔어요?"
태수: "들어오면서."
하연이 숨을 헐떡이면서도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처음 보는 웃음이었다. 태수는 그 웃는 입가에 짧게 입을 맞추고는, 이마를 하연의 이마에 기댔다. 둘 다 숨이 한참 가빴다.
태수: "여기서 더 하면 나 진짜 못 멈춰."
하연: "……"
태수: "그러니까 대답해. 버스 놓쳤으니까, 오늘은 우리 집 가는 걸로."
하연은 붉어진 얼굴을 숨기듯 태수의 맨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깜빡이던 형광등이 끝내 툭 꺼졌다. 어둠 속에서 태수는 하연의 손을 찾아 손가락 사이사이에 깍지를 꼈고, 이번만큼은 절대 놓아줄 생각이 없다는 듯 꽉 힘을 주었다.